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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일기공 김성묵 대표이사 은탑산업훈장 수상 (주)성일기공을 돌아보다 정대상 기자입력 2023-11-21 09:24:35

 2023 기계 산업 분야 발전 유공자 포상식에서 은탑산업훈장을 수상한 (주)성일기공 김성묵 대표이사가 건배사를 하고 있다 / 사진. 여기에

 

작은 천막공장에서 중고 선반과 밀링 머신으로 시작했던 (주)성일기공이 이제는 120여 대의 공작기계를 갖춘 세계적인 정밀 축 커플링 생산 회사로 성장했다. 

 

우리 정부는 한 해의 끝이 다가오면 당해 산업 발전에 노력을 경주한 업계 종사자들의 노고를 위로하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심기일전하는 자리를 마련하고 있다. 여기에는 대한민국 산업 발전에 기념할 만한 업적을 세운 사람이나 기업을 기리는 논공행상의 장도 빼놓을 수 없다.


지난 10월 산업통상자원부가 63컨벤션센터에서 개최한 기계 산업 분야 발전 유공자 포상식도 그중 하나이다. 올해는 두 점의 은탑산업훈장을 포함해 총 64점의 훈장과 포장, 표창 등이 주어졌다.


대한민국 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적이 뚜렷한 이에게 수여되는 산업훈장은 산업 종사자가 얻을 수 있는 가장 높은 명예이다. 올해는 (주)성일기공(이하 성일기공) 김성묵 대표이사가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한 분야에 일생을 바친 이가 걸어온 길은 그 자체로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정밀 축 커플링을 국산화한 김성묵 대표이사의 발자취도 마찬가지이다. 선반·밀링 기능공으로 시작해 정밀 축 커플링의 완전한 국산화라는 업적을 일궈낸 그의 지난 세월은, 국내 모션 업계 관계자들에게 큰 울림을 준다.

 
김성묵 대표이사의 이번 은탑산업훈장 수상은 그간의 노고를 업계 관계자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부가 공인했다는 의미이다. 어쩌면 김 대표이사가 은탑산업훈장을 수상한 계묘년(癸卯年)은 30년이 넘는 성일기공 역사에서 잊을 수 없는 한 해로 기억될 듯싶다. 

 

구로동 천막공장에서 움튼 국산 정밀 축 커플링
성일기공은 지난해 전 세계 시장 점유율 5% 이상, 세계 5위권 이내의 정밀 축 커플링 제조사로 인정받아 ‘세계일류상품’에 선정되면서 이제는 완전한 수입품 대체를 넘어 해외 시장에도 활발하게 수출하고 있다.


성일기공의 처음은 지금과 달랐다. 1980년대 후반, 문래동 감속기 공장에서 선반·밀링 기능공으로 재직했던 김성묵 대표이사가 성일기공을 설립했던 이유는 오롯이 가족 때문이었다. 가진 것 없이 서울로 상경해 아내와 두 자식을 부양해야 했던 그는 남의 일만 해서는 현실을 바꾸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이 시기에 김성묵 대표이사는 서울산업대학교(現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야간대학 기계공학을 수료했다. 기능공으로서 보유하고 있던 실기 역량에 이론을 더하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이론과 실기로 무장한 김성묵 대표이사는 구로동의 작은 천막 공장에서 성일기공을 창업하고,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니며 어렵게 구했던 종잣돈으로 중고 선반 한 대와 밀링 머신을 들여놨다. 김 대표이사의 아들이자 지금은 가장 든든한 조력자인 성일기공 김인호 전무이사는 구로동 천막공장을 “지대가 낮아 비만 오면 침수가 되는 바람에 항상 펌프를 가져다놓고 온 가족이 공장에서 먹고 자면서 물을 빼내던 게 당연한 일상”이라고 회고했다. 그렇게 열악한 환경에서 시작했던 성일기공이 지금은 3천 평 규모의 공장과 120여 대의 공작기계를 갖춘 전 세계 최고 수준의 정밀 축 커플링 다품종·대량 생산 기업으로 변모한 것이다.

 

은탑산업훈장을 수상하는 김성묵 대표이사 / 사진. 여기에

 

고물상에서 발굴한 국산화 기술의 단초
창업 초기 임가공을 주력 사업으로 영위했던 김성묵 대표이사는 기업이 성장하려면 독자 아이템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절대적으로 정보가 부족했던 1980년대 후반, 기계 기술에만 전념했던 그에게 시장성 있는 아이템을 발굴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때부터 김 대표이사는 매일 고물상을 찾았다. 우리나라 자동화 산업이 개화하던 그 시기에, 매일같이 고물상으로 흘러들어오는 여러 기계 부품들을 살펴보면서 본인의 기술을 가장 잘 발휘할 수 있는 아이템을 발굴하겠다는 심산이었다. 그렇게 그의 눈에 들어왔던 제품이 바로 커플링이다. 자동화에 대한 개념이 부족했던 그 시절에 막연하게나마 모든 모터에는 커플링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김성묵 대표이사는 외산 제품을 집요하게 분석했다. 커플링의 구조부터 시작해 작동 원리, 필요한 가공 기술 등 국산화에 필요한 기술 확보에 끈질기게 매진한 것이다. 그렇게 탄생한 제품이 바로 올드햄 타입의 커플링이었다. 기술적으로 진입 장벽이 낮은 올드햄 커플링이었지만 성일기공의, 나아가 우리나라의 첫 국산화 양산 커플링의 탄생이었다. 

 

성장 토대를 다지다
성일기공이 처음 내놨던 올드햄 커플링은 입소문을 타면서 판매가 궤도에 올랐다. 노동집약적이었던 우리나라의 산업구조가 본격적으로 기계화·자동화되기 시작했던 1990년대는 기계를 빨리, 오랫동안 가동해 조업하는 게 생산자에게 중요한 시기였다. 전량 외산 커플링밖에 없었던 이 당시에 작은 부품 하나가 망가져 하릴 없이 기계 가동을 멈춰야 했던 작업자들이 성일기공을 찾기 시작했다. 


김성묵 대표이사의 적극적인 시장 개척 의지도 주효했다. 직원이 단 3명밖에 없던 시절부터 산업 전시회를 찾아 제품을 홍보하고, 올드햄 커플링뿐만 아니라 다양한 타입의 커플링 제작 의뢰를 받으면서 양산 품목을 하나씩 늘려나갔다. 한 장짜리 전단지를 만들어 온 공단을 돌면서 뿌리기도 했다.


조금씩 판매량이 많아지고, 제품 가짓수도 늘어나면서 김성묵 대표이사는 해외 시장까지 염두에 두기 시작했다. 1990년대 후반에 들어서는 해외 전시회를 참관하거나, 실제 참가하기도 했다. 자금이 넉넉하지 않았던 시기부터 하노버메쎄 전시회에 부스를 꾸려 정밀 축 커플링을 출품했다. 내부적으로는 양산 모델을 늘리고, 생산 능력을 확장하는 데에도 집중했다. 안팎으로 쉼 없이 움직이면서 재투자를 하다 보니 예상치 않은 기회도 왔다. 특히 김 대표이사가 독일 전시회 일정을 마무리하고 귀국하는 비행기에서 국내 대기업 생산기술조직 실무자와 만난 일화는 성일기공 영업망 확대에 중요한 기점이기도 하다. 김인호 전무이사는 “귀국하는 비행기에서 대표님과 우연찮게 명함을 교환했던 분이 브라운관 자동화 설비에 새로운 기술 도입을 연구하던 실무자였다. 당시 흔하지 않던 정밀 축 커플링을 국산화했다는 점에 주목해 두 분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 인연을 계기로 실제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대기업이 우리 제품을 검토하고, 실제 판매로 이어졌다. 대기업 협력업체들에 성일기공의 커플링이 판매되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유통망도 갖춰졌다.”라고 전했다.

 

사진. 여기에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만 구매하세요!”
김성묵 대표이사는 창업 이후 여러 번 공장을 이전했다. 구로중앙유통단지 건너편 뒷골목의 천막공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신도림 방면으로, 그 다음에는 현재 서울모터스가 위치한 신정동으로, 현재의 인천공장에 들어서기 전에는 문래동으로 이전했다. 약 5년 간격으로 수차례 공장을 이전했지만 구로중앙유통상가 인근을 벗어나지 않았다. 고객이 주문하면 당일, 혹은 그 다음날 바로 물건을 매장에 가져다주기 위해서였다. 어떤 날은 하루에 서너 번씩 공장과 매장을 왕복했다. 2019년에는 현재의 인천공장으로 확장했다. 거리는 늘어났지만 납기원칙은 그대로 지속하고 있다. 이제는 물리적인 거리를 좁히는 대신 기업 프로세스의 변화로 빠른 공급을 유지한다. 더 큰 공장에서, 더 다양한 종류를, 더 많은 양으로 생산해 빠르게 공급하면서 고객의 재고부담까지 덜어낸 셈이다. 

 

정밀 축 커플링의 완전 국산화
30년이 넘는 성일기공의 역사에서 제품 개발과 생산 기술 개발, 생산 관리까지 도맡았던 김성묵 대표이사의 역할을 이제는 믿을 수 있는 100여 명의 임직원들이 함께 나누고 있다. 김인호 전무이사는 “2000년대 초반까지 주먹구구식으로 생산 품목을 늘려갔다면 이후 10년간은 성일기공이 체계적으로 회사의 시스템을 갖춘 시기”라고 표현했다. 2010년 전후로 성일기공 기술연구소가 정식으로 출범했고 ‘물건을 잘 만드는 회사’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기술 검증이 가능한 회사’로 발전했다. 2016년 이후로는 개발과 품질 검증을 위한 테스트 설비도 공격적으로 갖추기 시작했으며 아직도 이 부분의 투자를 계속하는 상황이다. 대외적인 변화도 컸다. 국내 최초 정밀 축 커플링 메이커에서 국내 최대 정밀 축 커플링 메이커로 성장했으며, 국내 자동화 부문 시장 점유율은 70~80%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2000년대 이후부터는 수출 물량이 늘어나면서 2012년 중국 법인, 2013년 일본 법인까지 설립했다. 지금은 미국과 독일, 일본과 같은 소위 정밀 축 커플링 ‘메이저’들과의 경쟁에 나선 상황이다. 요컨대, 이번 김성묵 대표이사의 은탑산업훈장 수상은 정밀 축 커플링 분야의 완전한 국산화, 나아가 세계화에 성공한 공로를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김인호 전무이사는 “중소기업 대표자로서 은탑산업훈장을 수상한 것은 아주 명예로운 일이다. 많은 산업들 중 작은 한 분야이지만 완전 대체를 이뤄낸 성일기공의 국산화 노력을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굉장히 감사하게 생각하며, 앞으로도 대한민국 산업 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대신 소회를 밝혔다.

정대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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